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쓰자카 다이스케 (문단 편집) ====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2000 시드니 올림픽]] ==== 마쓰자카는 1999 데뷔 시즌 신인답지 않은 엄청난 기록[* 25경기 16승 5패 180이닝 동안 151 탈삼진 ERA 2.60 기록.]을 남겼는데, [[소포모어 징크스|2년차에는 그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2000 시드니 올림픽]] 대회 전까지 25경기 12승 7패[* 마쓰자카는 한여름부터 퍼지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 전 봄과 초여름에 그나마 승수를 많이 쌓아 승률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 148과 3분의 2이닝 동안 129탈삼진 ERA 4.36을 기록하며 전년도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쓰자카는 8월 한여름부터 퍼지는 모습을 보이며 부진했다. 특히 대회 직전인 8월 16일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긴테츠 버팔로스]]와의 경기부터 5경기 동안 승을 챙기지 못했으며 이 5경기 동안 '''25이닝동안 24자책점'''[* 실점은 총 28점으로 25이닝 동안 28점이었으니 이닝당 꼬박 1점씩은 실점을 허용한 셈이다...]을 기록하며 이 5경기 동안 '''ERA는 무려 8.64'''였다. 게다가, 올림픽을 2주 앞둔 9월 3일 세이부 돔에서 열린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긴테츠 버팔로스]]와의 경기에서 1루 커버를 들어가다 [[https://www.khan.co.kr/article/200009041939241|타자 주자와 얽혀 아킬레스 건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올림픽 직전 마지막 경기인 9월 10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다이에 호크스]]와의 경기에서도 6과 3분의 2이닝 동안 6실점(5자책)을 기록하며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렇듯, 여름에 퍼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닝 소화력도 떨어지고 탈삼진 능력도 전년보다 못하자 슬럼프 설도 흘러나오고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프로와 아마추어를 골고루 선발[* 2000년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시드니올림픽]] 때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요미우리]]를 포함한 대다수 [[센트럴 리그]] 팀들이 선수차출을 거부했다. [[주니치 드래곤스]]의 백업포수 스즈키 정도만이 [[센트럴 리그]] 소속 선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올림픽기간 내내 주전으로 출전한 케이스.]해 참가한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2000 시드니 올림픽]]'''에 마쓰자카는 그래도 '''에이스 선발 투수'''로 활약한다. 특히,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한국과의 2번의 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왔는데, 기대와는 달리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 물론 준결승전에 8회 이전까지는 괴물 투수 다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8회 [[이승엽]]에게 결정적인 '''2타점 적시 2루타'''를 맞고 패전투수가 되어 그 임팩트 때문에 생각보다 엄청나지 않았다는 평이 우세해졌다. 이는 반대편 선발투수 [[구대성]]이 '''9이닝 1실점 완투승'''이라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것에 대비되어 마쓰자카가 한국전에 보여준 모습이 괴물 투수의 그 명성치고 별로였다는 것이지, 마쓰자카의 기록만 놓고 보면 평범 이상의 기록을 한국전에 남겼다.] *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대회 첫 경기인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예선 풀리그#s-2.2|미국과의 경기]]에 마쓰자카는 선발로 등판하였다. 이 때 상대 선발은 향후 메이저에 진출하기도 하는 당시에는 마이너 선수였던 [[벤 시츠]][* 이후, 메이저에 진출하여 커리어동안 4번의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특히 2004년은 그의 최전성기였다.]. 1회에는 선두 타자 브렌트 애버내시[* 2001년에 템파베이에서 메이저 데뷔전을 치뤘지만, 별 다른 활약은 없었고 2005년을 마지막으로 MLB에서 자취를 감췄다.]를 풀카운트 접전 끝에 유격수 땅볼 처리, 2번 브래드 윌커슨[* 훗날,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통산 타율 0.247 홈런 122개를 때려냈다. 하지만, 2008년 허리 부상이후 별다른 활약은 하지 못했고 2010년을 마지막으로 메이저에서 자취를 감췄다. 한 시즌에 32개의 홈런을 쳐낸 적도 있을 정도로 일발장타 능력이 있던 선수.]을 중견수 플라이 아웃 처리하며 무난하게 시작했다. 3번 마이크 닐[* 당일 경기 [[스기우치 도시야]]로 부터 끝내기 홈런을 쳐낸 선수. 커리어 내내 마이너에서 뛰었으며, 메이저 경력은 1998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뛴 6게임이 그의 커리어에서 전부였다.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다.]에게 볼 넷을 내줬지만, 4번 타자 어니 영[* 메이저 통산 88경기에 출전했고 27 개의 홈런 0.225의 타율을 기록한 선수. 시드니 올림픽 이후에는 2002년에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용병 신분으로 [[NPB]] 무대를 밟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별 다른 활약은 없었고 2003년 메이저에 다시 복귀하지만 2004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을 우익수 플라이 아웃 처리하며 1회를 끝냈다. 2회에는 5,6,7번 타자인 존 코튼[* [[https://archive.md/20111005182332/http://www.teamusa.org/news/2010/05/27/q-a-with-gold-medalist-john-cotton/36210|금메달 리스트 존 코튼과의 Q&A]]] - 마이크 킨케이드[* 2002년과 2003년 다저스에서 시즌을 보내기도 한다.] - 덕 민케이비츠[* [[MLB]] 통산 1087게임 출장 0.271의 타율 홈런 66개 장타율 4할 5리로 장타 능력은 별로였지만, 눈야구가 좋아 볼 넷을 잘 얻어내던 선수. 여기에 뛰어난 수비력을 보유하여 2001 [[아메리칸 리그|AL]] 1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86년 만의 [[2004년 월드 시리즈|월드시리즈]] 우승 시즌 당시 후보 1루수기도 했다. 참고로, 당시 주전 1루수는 케빈 밀러. 민케이비치는 [[밤비노의 저주#s-5.2|밤비노의 저주]]를 끝낸 마지막 아웃 카운트 [[풋아웃]]을 기록한 선수기도 하다. 이 해에 [[보스턴 레드삭스|보스턴]]은 팀 전체가 Sportsman of the year에 선정되었다. 이 덕에 민트케이비치 본인도 Sportsman of the year가 된 것도 커리어에서 특이점이라면 특이점. 여러모로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2000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한 미국 타자 가운데서는 가장 뛰어난 커리어를 보유한 선수. 투수까지 포함하면 [[로이 오스왈트]]와 [[벤 시츠]]가 있어 이름값에서 밀리긴 하지만..][* 이외에도, 한국과는 결승 홈런을 두 번이나 친 것으로 인연이 있는 선수.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예선 풀리그#s-5.4|예선전]]에서는 [[진필중]]을 상대로 결승 '''만루 홈런'''을 쳐내 팀의 4:0 승리에 일조하였고,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준결승 2경기|준결승]]에서 다시만난 한국을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쳐냈다. 참고로 이 때 끝내기를 내준 투수는 [[박석진]]. 즉, 결승타로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국을 두번이나 울린 선수기도 하다.]를 각각 삼진 - 유격수 땅볼 - 삼진 처리하여 삼자범퇴로 이닝을 끝냈다. 3회에도 8번 9번 타자인 마커스 젠슨[* 시드니 직전까지 메이저 저니맨으로 팀을 옮겨다녔지만 별 다른 활약은 없었고, 당시는 마이너 팀 소속이었다.]과 아담 에버렛[* 커리어 대부분을 마이너에서 전전하다 2012년 1월에 은퇴했다. 그래도 MLB 통산 0.242의 타율에 40홈런을 기록하며 최소한의 족적 정도는 남긴 선수.]을 둘 다 삼진 처리하며 무난하게 2아웃을 잡았다. 하지만, 다음 1번 타자 브렌트 애버내시에게 미국 팀의 첫 안타가 되는 좌전 안타를 내줬다. 그래도 2번 브래드 윌커슨을 우익수 플라이 아웃 처리하며 3회도 무실점으로 마무리. 4회에는 선두 타자 마이크 닐을 중견수 플라이 아웃 처리하였지만, 4번 타자 어니 영에게 중전 안타를 맞아 1사 1루가 되었다. 하지만 다음 타자들인 존 코튼과 마이크 킨케이드를 둘 다 중견수 플라이 아웃 처리하며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쳤다. 5회에는 선두 타자 덕 민케이비츠를 중견수 플라이 아웃, 8번 마커스 젠슨을 포수 팝플라이 아웃 처리, 9번 아담 에버렛을 유격수 땅볼 처리하여 삼자범퇴로 이닝이 끝났다. 6회에는 선두 타자 브렌트 애버내시와 후속 타자 브래드 윌커슨을 각각 1루수 - 3루수 플라이 아웃 처리하였으나, 3번 타자 마이크 닐을 볼 넷으로 내보내 2사 1루가 되었다. 그래도 4번 어니 영을 우익수 플라이 아웃 처리하며 무실점으로 마무리. 문제는, 7회말. 선두 타자 존 코튼에게 투낫씽 유리한 카운트에서 무리하게 삼진을 잡으러 들어갔다가 한 가운데 공을 던져버렸다. 존 코튼이 이를 놓치지 않고 우중간을 가르는 3루타를 쳐내며 무사 3루의 위기를 맞는다. 여기서, 다음 타자 마이크 킨케이드에게 좌전 안타를 맞아 선취점을 내줬다. 여기다가 후속 타자 덕 민케이비츠에게 좌전 안타를 맞으며 무사 1,3루의 위기가 이어졌다. 얕은 타구였기 때문에, 웬만하면 무사 1,2루였겠지만 상대의 히트 앤런 작전이 성공해 1,3루가 되었던 것. 거기다가 후속 타자, 마커스 젠슨이 쳐낸 타구가 투수 쪽을 향했고 마쓰자카가 먼저 2루에 던지고 2루수가 홈에 들어오는 주자를 잡기위해 포수에게 송구했지만, 홈에서는 간발의 차로 세이프. 즉, 추가로 1실점을 하게되었고 1사 1루 상황이 되었다. 당시 마쓰자카는 타구를 잡자마자 3루를 쳐다보며 3루에 있는 주자를 묶었다. 그런데, 마쓰자카가 뒤돌아 2루로 던지자마자 3루 주자가 빠른 발로 홈에 쇄도했다. 당시 3루 주자는 마이크 킨케이드[* 준족을 자랑하는 선수였으며, 훗날 용병 신분으로 2004년 [[한신 타이거즈]]에 입단했으나 별다른 활약은 하지 못했다.]로 발이 빠른 선수였으며, 잠시 틈을 보이니 바로 홈으로 쇄도했다. 마쓰자카도 어이없었던지 실점 이후 한참을 2루 쪽을 바라보며 씁쓸해했다. 스코어는 2:0에 1사 1루 상황에서 각 한개씩 총 두 개의 공만으로 9번 타자 아담 에버렛을 포수 팝플라이 아웃 처리, 1번 타자 브렌트 애버내시를 1루수 플라이 아웃 처리하며 이닝을 더 이상 실점없이 끝낸다. 8회에는 선두타자 브래드 윌커슨을 2루 땅볼 처리하였고, 마이크 닐에게 유격수 방면 내야 안타를 내준다. 4번 어니 영을 우익수 플라이 아웃 처리하여 2사 1루 상황이 되었다. 존 코튼의 타석에서 1루 주자 브래드 윌커슨이 2루 도루를 시도했는데, 포수의 --중견수 앞 안타-- 송구 실책으로 주자가 3루까지 진루했다. 추가 실점의 위기 상황에서 타자 존 코튼을 우익수 플라이 아웃 처리하여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냈다. 그러는 한편, 일본의 타자들은 7회까지 최고 구속 156km/h를 기록한 상대 선발 [[벤 시츠]]의 구위에 눌려 4안타 빈공으로 점수를 뽑지 못해 마쓰자카의 패색이 짙어졌다. 하지만, 일본 타자들이 8회부터 분투하여 8회에 타구치의 3루타에 이은 오키하라의 유격수 땅볼로 1점을 만회하고 9회에는 행운의 내야안타와 상대의 실책 덕에 1점을 획득해 승부를 2:2 원점으로 되돌렸다. 동점 상황 9회말에 다시 마운드에 올라선 마쓰자카는 선두 타자를 유격수 땅볼 처리했지만, 덕 민케이비츠에게 유격수 키를 살짝 넘기는 안타를 내주며 1사 1루 상황이 되었다. 여기서 덕 민케이비츠 대신 대주자 트래비스 도킨스[* MLB 통산 타율 0.163의 처참한 타격을 보여준 선수. 준족을 자랑해, 메이저리그 경기에서는 대부분 대주자로 경기에 기용되었다. 그리고 커리어 대부분을 마이너에서 보냈다.]가 투입되었고, 후속 타자 마커스 젠슨의 타석에 도킨스가 2루 도루를 성공했다. 1사 2루 상황에서 젠슨이 2루 땅볼 진루타를 쳐내며 2사 3루의 위기가 되었다. 자칫 잘못해서, 빗맞은 안타라도 내줬다가는 끝내기 실점이 될 수 있던 상황. 다음 타자 아담 애버렛을 풀카운트 접전끝에 직구로 삼진 잡아내며 실점없이 이닝 마무리. 2:2 동점으로 연장까지 승부가 이어졌다. 10회초 일본 타자들은 득점을 내주지 못했고고, 동점 상황에서 마쓰자카는 여전히 10회말 마운드에 올라왔다. 10회말 선두 타자 브렌트 애버내시에게 2루수 키를 살짝 넘기는 안타를 내줬다. 무사 1루. 여기서 마쓰자카의 위기 관리 능력이 발휘된다. 2번 브래드 윌커슨은 희생 번트를 시도 했는데, 이 번트 타구가 투수 쪽에 그대로 떠버리고 만다. 1루 주자는 당연히 투수가 플라이 아웃 처리할줄 알고 1루로 귀루 하였으나, 마쓰자카는 의도적으로 낙구[* 마쓰자카가 낙구 이전에 공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고의낙구]]까지는 아니다. 또 원래 번트에는 [[고의낙구]]가 적용되지 않는다. 자세한 [[고의낙구]]의 개념은 본 항목 참조.]시켜 1루에 송구해 타자 주자를 먼저 처리했다. 그 사이 2루로 부리나케 달린 1루 주자는 결국 런다운에 걸리고 말았고 아웃되었다. 즉, 타자 주자와 1루 주자 모두 말소. 마쓰자카의 센스가 돋보인 장면이었다. 야만없이지만, 번트가 성공해 1사 2루가 되었다면 안타 하나라도 맞으면 끝내기 패배 당할 수 있었다. 마쓰자카의 센스로 위기를 일거에 방지할 수 있었던 것. 후속 타자 마이크 닐도 1루 땅볼 처리하여 10회는 무실점으로 막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11회부터는 마쓰자카의 뒤를 이어 [[스기우치 도시야|스기우치]]가 등판하여 11회말과 12회말을 실점없이 막았으나 13회말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하고 상대 타자 마이크 닐에게 끝내기 2점 홈런을 맞으며 팀은 4:2로 미국에 패하게 된다. 결국 마쓰자카는 승리를 기록하지는 못했으나, 이날 '''10이닝 8피안타 5탈삼진 2볼넷 2실점 당일 경기 ERA 1.80'''으로 대회 시작 전 슬럼프설을 부정이라도 하듯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마이너 올스타 급의 미국 타선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 이후 대회에서의 좋은 활약을 기대케 하였다. 최고 구속은 153km/h. 하지만, 여름에 퍼지는 모습을 리그내에서 보여준데다가 첫 경기부터 138개의 공을 던지며 [[혹사#s-5.2|혹사]]의 불안을 야기했다. 한편, 상대 선발 [[벤 시츠]]도 7이닝 4피안타 무실점으로 훌륭한 피칭을 보여줬고[* [[벤 시츠]]는 결승 쿠바전에 다시 나와 9이닝 3피안타 무실점 완벽투를 선보이며 팀의 금메달 획득에 앞장섰다.] 마쓰자카와의 선발 싸움에서도 이겼으나, 불펜의 방화로 승리 투수가 되지는 못했다. * 마쓰자카는 며칠 간 휴식을 취하다가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예선 풀리그#s-7.2|대한민국과의 예선 경기]]에 등판하였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데다가 대회 첫 경기 미국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한국 측에서도 경기 전 점수를 많이 뽑기는 어렵다는 예상이 대다수였다.[* [[선동열]]도 마쓰자카에게는 "많이 뽑아봐야 2점"이라는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20&aid=0000026146|예상을 내놓았다]]. --마쓰자카 팔 각도 좁혀야..--]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한국 타자들은 분석을 많이한 덕인지 마쓰자카를 1회부터 엄청나게 두들겼다. 1회초 선두타자 [[이병규(1974)|이병규]] 좌전안타-[[박종호(1973)|박종호]] 볼넷으로 무사 1,2루의 위기를 내줬지만 3번 [[박재홍(야구)|박재홍]]을 마쓰자카가 삼진으로 잘 잡아내어 1사 1,2루로 아웃 카운트를 하나 늘렸다. 하지만, 4번 타자는 당시 대한민국의 주포 [[김동주(타자)|김동주]]. [[김동주(타자)|김동주]]는 직구가 한가운데 쏠린 마쓰자카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장타를 터트렸다. [[김동주(타자)|김동주]]의 2루타로 이병규와 박종호는 홈을 밟게 되어 2:0으로 선취점을 내준다. 이어 [[김기태(1969)|김기태]]는 아웃되었지만 '''[[이승엽]]이 마쓰자카의 몸쪽 직구를 그대로 받아 쳐내 투런 홈런'''을 치며 1회에만 마쓰자카는 4점이나 내주고 만다. 하지만 마쓰자카는 각성하여 6회까지 더 이상 실점하지 않고 피칭하였고 그러던 중에 타자들은 1회 두 점, 5회 한 점을 뽑아 내주어 4:3의 스코어 한 점차 스코어로 7회초 한국의 공격에 들어선다. 7회초 선두타자 [[홍성흔]]에게 볼 넷을 내준 뒤, 이후 [[정수근]]의 2루타가 터졌으나 1루 주자 홍성흔이 3루에서 아웃 되어 1아웃 2루가 되었다. 그 뒤, [[박진만]]의 1타점 2루타가 터지며 마쓰자카는 추가로 한 점을 내주었다. 스코어는 5:3으로 점수차가 더 벌어졌다. 거기다가 1사 2루의 위기가 계속 되었지만, 후속 타자 [[이병규(1974)|이병규]]를 삼진 처리, [[박종호(1973)|박종호]]를 1루수 땅볼 아웃 처리하며 더 이상 실점없이 이닝을 끝냈다. 그런데, 7회말 [[임창용]]의 [[분식회계(야구)|분식회계]]로 인해 2점을 내줘 한국은 동점을 내주었고 마쓰자카는 패전을 면했다. 8회와 9회는 실점없이 마무리한 마쓰자카였지만, 팀 타자들도 9회까지 추가점을 내주지 못하고 정규이닝 내에 두 팀은 승부를 가리지 못해 5:5 스코어로 10회 연장으로 접어들었다. 10회 이전에 마쓰자카는 마운드에서 내려갔고 10회초 부터는 도이 요시카즈가 마운드를 이어받아 이 경기에서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도이 요시카즈는 한국에 2점을 내주었고 일본도 10회말 한 점을 만회했으나, 1사 만루에서 나온 병살타로 인해 더는 점수를 뽑지 못하고 7:6의 스코어로 경기가 끝났다. 마쓰자카는 패전 처리 되지는 않았고 2경기 연속 노디시전이었으나 전 경기와 달리 이번 한국전에서는 기대와는 달리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 날 총 161개의 공을 던졌고[* 참고로, 앞선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예선 풀리그#s-2.2|미국과의 경기]]에서 138개의 공을 던졌으므로 두 경기에서 무려 299개의 공을 던진 셈.] 최고 구속은 156km/h를 기록하여 혼신의 투구를 펼쳤으나, '''9이닝 7피안타 10탈삼진 5볼넷 5실점 ERA 5.00'''으로 제구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김동주(타자)|김동주]]와 [[이승엽]]에게는 그의 주무기인 직구로 장타를 두들겨 맞았다. 2경기동안 19이닝을 던진 마쓰자카는 휴식 차원에서 예선 마지막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예선 풀리그#s-8.3|쿠바와의 경기]]와 준결승 쿠바전에는 등판 하지 않았고, 메달 획득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경기인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동메달 결정전|한국과의 동메달 결정전]]에 선발로 등판하며 이전 경기 아픔을 설욕할 기회를 얻게된다. * 준결승전에서 마쓰자카는 괴물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1회말 선두타자 [[이병규(1974)|이병규]]와 2번 타자인 [[박종호(1973)|박종호]]에게 연속 안타를 맞으며 '''무사 1,3루의 위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이후 [[이승엽]]과 [[김동주(타자)|김동주]]를 '''연속 삼진 처리'''하며 2아웃 2,3루[* 그 사이 박종호는 2루 도루를 성공시켰다.]로 아웃카운트를 늘렸고 마지막 [[김기태(1969)|김기태]]를 중견수 플라이 아웃 처리하며 1회의 위기를 끝낸다. 2회를 시작으로 마쓰자카는 6회 초 1아웃에서 [[이병규(1974)|이병규]]에게 우전 안타를 맞기 전까지 어떤 타자도 출루시키지 않았다. 즉, 1회 노아웃 1,3루 상황에서 [[이승엽]]의 타석을 시작으로 6회말 [[정수근]]의 타석까지 무려 '''16타자 연속 범타'''처리 한 것이다. 하지만, 6회 잔잔하던 상황에 위기가 찾아온다. [[이병규(1974)|이병규]]의 우전안타-[[박종호(1973)|박종호]] 볼넷으로 1사 1,2루 위기가 찾아왔고 [[이승엽]]을 삼진으로 잡아냈으나, 이병규가 3루 도루를 성공해 2사 1,3루의 위기가 된다. 다음 타자는 [[김동주(타자)|김동주]]였고 김동주는 잘 맞은 타구를 날린다. 그러나 타구가 임팩트에 비해 생각보다 멀리 뻗지는 못했고 중견수에게 잡히며 마쓰자카는 실점 없이 6회까지 마무리한다. 이후, 7회도 무난히 마무리한 마쓰자카와 [[구대성]]. 경기는 0:0 팽팽한 균형이 이어져 8회로 이어진다. 8회말 [[박진만]]의 안타 - [[정수근]]의 희생번트 - 2루수 실책으로 이어져 [[이병규(1974)|이병규]]도 출루해 1사 1,3루가 된다. 여기서 후속타자 [[박종호(1973)|박종호]]가 포수 파울 플라이로 물러났고, 다음 타자는 전 ''세 타석을 모조리 삼진 당한 [[이승엽]]''. 게다가, [[이승엽]]은 당시 대회에서 매우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다음 타자는 [[김동주(타자)|김동주]]로 당일 경기 6회에도 좋은 타구를 날렸기 때문에 마쓰자카는 비어있는 1루로 이승엽을 걸러보내지 않고 정면 승부한다. 풀카운트 접전까지 가는 끝에 마쓰자카가 던진 공이 몸쪽 스트라이크존 중간 높이에 형성되었고[*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마쓰자카는 "풀카운트에서 어떤 공을 던질까 혼란스러웠다. 포수의 사인대로 직구를 던졌는데 이게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며 자신의 의도대로 던진 공이 아니었음을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20&aid=0000028174|밝혔다]]. ], 부진하던 [[이승엽]]은 그를 밀어쳐내 좌중간을 가르는 '''2타점 2루타를 작렬시킨다'''. 이후, 마쓰자카는 후속타자 [[김동주(타자)|김동주]]에게 1타점 빗맞은 우전안타를 맞아 2루주자였던 [[이승엽]]까지 홈에 들어와 '''8회에만 총 3점을 내준다'''. 이후, [[김기태(1969)|김기태]]를 중견수 플라이 아웃 처리하며 이닝을 더 이상 실점 없이 마쳤지만 이 3점은 너무나 뼈아팠다. 9회초에 일본 타자들은 [[구대성]]에게 1점을 만회하여 분전했으나 3점의 간극을 다 메우지는 못하고 그대로 팀은 3:1로 패하였다. 한국은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일본 선수들은 노메달 굴욕[* 1982년 LA 올림픽에서 야구가 처음으로 채택 된 이후, 일본은 처음으로 노메달 굴욕을 맛봤다. 즉, 이전까지는 최소 동메달은 확보했다는 얘기. 거기다가 처음으로 프로 차출이 허용된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맛본 노메달 굴욕이었고 그것이 라이벌 국인 한국에 패한 결과였으니 충격이 클만도 했다.]을 맛보며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 날 마쓰자카의 기록은 '''8이닝 6피안타 10탈삼진 1볼넷 3실점'''이었다. 이날 마쓰자카는 1회 무사 1,3루 때부터 6회 원아웃까지 무려 '''16타자 연속 범타'''처리 해내며 괴물 투수다운 면모를 보여주었고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예선 풀리그#s-7.2|직전 예선 한일전]]에서의 부진을 어느정도 만회하였다. 하지만, 마쓰자카는 8회 [[이승엽]]을 상대로 정면 승부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장타를 내주게 되었고 이로 인해 완투패하게 되었다.[* 1루가 비어있어 무모한 정면승부로 보였지만 당시 성적을 보면 [[김동주(타자)|김동주]] 대신 [[이승엽]]을 선택해 정면 승부하는 것이 정석적인 선택이다. 대회 기간 내내 안좋은 모습을 보였을 뿐 아니라, 당일 경기에서도 세 타석 삼진을 당한 [[이승엽]]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또 [[김거김]] 작전이 성립되려면 거르는 타자보다 다음에 타석에 들어올 타자가 더 상대하기 수월해야 했지만, [[김동주(타자)|김동주]]는 대회 기간 동안 4번 타자 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당일 경기에서도 6회에 임팩트 좋은 타구를 날리기도 하여 세타석을 모조리 삼진 당한 [[이승엽]]과는 비교 불가 수준이었다.] 비록, 완투패한 마쓰자카였지만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예선 풀리그#s-7.2|조별 예선 경기]]와는 달리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경기 초중반까지는 괴물 투수라는 그의 별명에 걸맞는 피칭을 보여줬다. 특히, 직구 구위와 변화구 무브먼트로 한국 최고 타자들인 [[이승엽]]과 [[김동주(타자)|김동주]]의 헛스윙을 이끌어내는 장면은 그가 가진 볼의 위력을 가늠할 수 있게 했다. 이 대회에서 마쓰자카의 기록은 '''3경기 27이닝 21피안타 25탈삼진 8볼넷 10실점(7자책) ERA 2.33'''이었다. 딱히, 부진한 것은 아니었으나 한국전만 따져보면, 2경기 17이닝 8실점(5자책) ERA 2.65로 기대만 못한 피칭을 보여줬다. 물론, 대회 시작 전 리그에서 부진한 모습[* 마쓰자카는 올림픽 직전 5경기에서 25이닝 28실점(24자책) ERA 8.64라는 처참한 기록을 보여주었다.]을 보였던 마쓰자카였기에 국제전에서 오히려 이러한 기록은 그에 비하면 좋은 피칭을 보여줬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구대성]]과의 선발 싸움에서 지며 완투패 했기에 한국 내에서 마쓰자카는 한국 킬러를 꼽을 때 잘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대만 못해 실망했다는 평이 주를 이룰 정도.[* 아무래도 이건,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예선 풀리그#s-7.2|예선전]]에 [[이승엽]]에게 투런 홈런을 맞았던 탓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승엽에게 결승 2타점 2루타를 맞은 임팩트 탓도 있기는 하다. 게다가 '''일본 킬러''' [[구대성]] 때문에 더 묻힌 감도 없지 않아 있다.] 여하튼, 저 성적이 딱히 못 던졌다고 볼 만한 성적은 아니지만, '''헤이세이의 괴물'''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일본 전국구 스타였던데다가 한국에도 그 명성이 익히 알려졌던 탓에 그 기대에 비하면 또 잘 던진 기록이라 볼 수도 없었기에 다소 별로였다는 평이 일본 내에서도 대두되었다. 신인 때, 기성 프로 선수들을 압도하던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였지만,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으며 슬럼프를 겪다 대회에서도 신인 때의 모습이 안나왔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일본내에서도 마쓰자카가 한국에 두 차례나 두들겨맞은 것에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20&aid=0000028350|큰 충격을 받았다.]] 20살의 프로 초년병이기는 했지만 최고 인기를 누려온 괴물 투수가 상대 라이벌 국가의 최고 타자들에게 여러번 통타 당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쓰자카는 부진한 와중 올림픽을 출전하기 전인 9월 13일 당시 교제 중이던 니폰 TV 아나운서 시바타 토모요의 자택 아파트 앞에서 주차 위반 혐의를 받는다. 단순 주차 위반이라면 범칙금 정도만 내고 끝났겠지만, 당해 마쓰자카는 8월에 이미 속도 위반으로 인해 면허가 취소 되어 있던 상황. 즉, 무면허 운전을 한 것. 심지어 주차 위반을 은폐하려든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생겨 논란이 더 심화되었다. 당시 세이부 구단의 구로이와 아키라 홍보 과장이 그 대신 법정에 출두해 마쓰자카가 시바타 집에 갈 때 [[https://www.joongang.co.kr/article/759759#home|무면허 상태로 차를 몰고 갔다고 시인했다]]. 결국, 도쿄 지검에 서류 송검되어 약식 기소에 의해 벌금 19만 5000엔의 유죄 판결을 받는다. 이로인해, 당시 구단 사장인 오노 켄지 및 홍보 과장 구로이와는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하는 사태도 벌어진다. 심지어, 마쓰자카는 당시 사이타마현 교통 안전 캠페인 홍보대사기도 했다. 이 건이 알려진건 올림픽이 끝난지 한달 후인 [[https://sports.chosun.com/mobile/amp/article.amp3.htm?name=/news/old/200010/20001017s214|2000년 10월 17일]]이었고, 9월 13일은 시드니 올림픽 출전 직전으로 리그에서마저 부진하던 중이였기에 무면허 운전을 할 정도로 밀회에 빠져 올림픽에서까지 제 기량이 안나온 것이냐고 일부 언론에서 비판을 받았다. 특히 스포츠 호치의 한 기자는 정신이 다른데 팔려있으니 올림픽 전 리그에서도 부진했던 것이고 결국 올림픽에서마저 제 기량이 안나오고 상태가 별로일 수 밖에 없었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평범한 기록으로 대회를 마감한데다가 팀도 노메달 굴욕을 맛봤지만, 대회 전 리그에서 워낙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마쓰자카였기에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던진 시드니 올림픽에서의 마쓰자카가 부진했다는 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일본 내에서 정예 1군이 모조리 출전한 대회가 아니기에 시드니 올림픽 자체가 거의 회자되지를 않는다...] 마쓰자카 헤이터에 가까운 사람들이 마쓰자카 사생활을 들먹이며 올림픽에서 왜 부진했는지 알겠다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한국전에서 통타 당한 것에 충격 받았다는 평 정도만 찾아볼 수 있을 뿐, 이 대회에서 그가 부진한 성적을 보인 것은 아니기에 20살의 프로 초년병을 위로하고 감싸는 기사들이 주를 이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